꽤 오래전이죠.
저희 큰애가 3살 정도? 2000만원짜리 아파트 전세에 살았었습니다.
아파트 상가에 장보러간 아내와 아들이 돌아오면서
아이의 손에 꽤 비싸보이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더군요.
평상시 제가 먹으려 하면 비싸다고 못먹게하는......
누가 줬답니다.
사연인 즉슨 아내와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같이 탄 아가씨로 보이는 아줌마의 장바구니 속에 그 아이스크림이 있었던 겁니다.
3살짜리의 눈높이의 장바구니속 아이스크림은 아내의 눈에는 안보였죠.
녀석이 얼마나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냈는지
그 아줌마는 녀석의 눈빛을 보곤 그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아이의 손에 쥐어주더 랍니다.
아내도 눈치 못챘는데 그 아줌마가 눈치가 좀 빨랐던거죠.
넉넉하게 입은 옷 속으로 살짤 불러온 배를 보고는
임산부인것을 안 아내는 극구 사양을 했습니다.
나름 애 낳아 본 선배랍시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그 아줌마는 그냥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죠.
사실 그분은 청각 장애인이셨습니다.
남편분도 청각 장애인이시고......
그래서 제 아내보다고 더 빨리 아이의 눈치를 알아 차리신거죠.
아내는 집에 오고 나서야 수화로 고맙다고 할걸 하고 후회를 하더군요.
(사회복지사 1급! 이라고 수화를 조금 배웠답니다. 조금......)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3살배기 우리아이는 그저 아이스크림에 빠져 아무 생각없는
투명한 눈빛으로 그저 아이스키림 먹기에 모든 정신을 올인하고 있었죠.
알고 보면 그 부부와 제 아네는 같은 분께 수화를 배운 동문이기도 하고
그 수화선생님은 청각장애인들의 사회생활을 도와 주시는 자원봉사도 하시는
데다가 (그래서 제가 근무하는 공장에 자주 오셨었죠. 수화 통역하시러......)
저희 매형의 친구분이라서 하여간 알고지내지는 않아도
인연이 닿기는 하는 부부였죠.
그리고 5년 후 전 카센터를 개업해서 일하고 있고
그 아파트에서
이사나오면서 그 부부는 까맣게 잊고 살았었습니다.
몇달전 그 남편분이 헤드라이트 전구를 갈러 저희 가게에 오셨죠.
뭐 직접 만나고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냥 오며가며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전구를 갈다가 그분이 그분이라는 것이 생각 났습니다.
작업이 끝나고 헤드라이트 들어 오는 것을 확인 한 후에
얼마냐고 물으시더군요. 뭐 발음이 정확치는 않아도 나름 '얼마' 라는 말 정도는
알아들을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온거죠.
전 메모지에 단어 하나씩 적어 한장씩 뜯어 드렸습니다.
'00아파트 100동 800호 살았어요'
그리고 그분을 가르키고 손으로 6을 보여주었죠.
난 8층 살았었고 님은 6층 살았을때 서로 본적이 있지않냐는 뜻이 전달 되었죠.
(청각장애인과 메모로 대화하려거든 가급적 단어만 사용하세요. 문장을 화려할 수록
그분들이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저희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셨어요'
잠시 생각하시더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부인께서
5년전'
그리고는 한손으로 배가 부른 모양을 보여드리니 기억을 하시더군요.
점점 더 저를 기억하시는것 같았지요.
그리고는 메모와 손짓발짓으로 우리 아들이 정말 고마워 했고 저도 고마웠고
아이는 잘 낳으셨는지 아내가 궁금해 하고 아이도 가끔 아이스크림 준 아줌마를
이야기 한다며 한 5분은 떠들(?)었던것 같네요.
그리고 '수리비 = 아이스크림. 고마웠습니다.'
라는 마지막 메모를 건넸죠. 그리고 할수 있는한 최대한 활짝 웃었습니다.
(제가 웃는게 별로 안이쁘기는 하지만......)
또다시 손짓 발짓으로 그래도 내야한다 아니다 그냥 가도 된다로 실랑이를 하시다가
결국 제가 이기고 서로 허리숙여 인사하기를 여러차례 반복하고는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차안에 가족사진을 잠깐 보았는데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저녂에 집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왜 매상에서 5000원이 빠졌는지 설명을 했습니다.
평상시 1000원만 비어도 갖은 고문으로 회계를 정리하던 아내가
다행히 '잘했어'라며 드라마만 봅니다.
이제 9살인 아들은 누가 아이스크림 주었는데 왜 빈손이냐고 따지고 들어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고 용케 아들이 기억을 하더군요.
(사실 먹는것은 잘 기억함)
옆에 있던 둘째는 그때 나는 못먹었으니 하나 사줘야 한다고 나름 주장을 펼칩니다.
그때 당시엔 모유먹고 있었던 넘이......
세상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저 하나만이라도 착한 사람이 그 보답을 받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아이스크림은 당시 제 아들 녀석의 인생에 있어 가장 고급스럽고 만족스러운 간식이었고
저와 아내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죠.
헤드라이트 전구 하나와 바꿀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준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꼭 따지자면 중저가 합성오일을 퍼포먼스기계로 갈아드릴 정도의 보답은 해야 했지요.
제게 온 기회는 겨우 라이트 전구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전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 부부를 위해
무언가 제가 갚을 기회가 올 날을 기다리고 있죠.
이야기가 길어져서 하고싶은 이야기가 빠졌네요.
다음번에 올리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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